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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전시실

제1전시실

  • 영산강에 자리 잡은 최초의 인류 - 구석기시대
  • 영산강유역에서는 약 10만년 전후 중기구석기시대로부터 1만년 전 후기구석기시대가 끝날 때까지 구석기인들이 살면서 남겨놓은 다양한 증거가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촌곡 · 당가유적, 장동리 용동유적, 장년리 당하산유적, 사창유적, 도산유적 등이다. 또한 당시 구석기인들의 흔적은 서남해안의 내륙과 가까운 섬 지역에서도 발견되는데 해수면 변동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과 비슷한 기후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강과 인근바다를 넘다들며 이곳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산강유역과 서남해안 지역은 구석기인들의 역동적인 발자취가 남아 있는 생활터전이었다.
  • 최초의 바다 개척자 - 신석기시대
  • 갱신세 말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식생이 변함에 따라 사냥감이 멸종하거나 이동하게 되었다. 신석기시대인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사냥과 채집에서 원시적인 농경, 목축 및 어로 등으로 생활 방식을 확대하였다. 점차 농경생활이 익숙해지면서 토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신석기시대인들은 주로 물과 식량자원이 풍부한 바닷가나 큰 강 또는 섬 지방에 자리 잡고 생활하게 되었다. 전남지역의 신석기유적은 해안에 위치한 함평 장년리와 완도 여서도, 신안 흑산도 소흑산도 등 섬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또한 패총에서는 육지와 유사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섬과 육지의 활발한 교류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 내륙과 섬의 문화지도 형성 - 청동기시대
  • 청동기시대인들은 주로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재농경도구를 생활용구로 사용하였으며, 청동기는 권위의 상징물이나 의기로 특정 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장흥 갈두, 고흥 한천, 화순 대신리 · 효산리, 여수 적량동 등의 지석묘유적과 영광 군동, 영암 금계리, 장흥 신풍유적에서 마을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전남지방의 청동기시대 유적은 강이나 바닷가에 위치한 구릉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유적의 분포는 내륙과 섬과의 정보 교환과 물자의 이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동아시아 해상교류의 시작 - 철기시대
  • 철기시대는 철기의 사용으로 농업생산량이 늘어나게 되었고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국가가 출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철기를 바탕으로 문화가 점차 정착되었고 내륙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까지 확장하게 된다.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는 칠기류, 무구류, 농공구류와 토기류, 벼껍질의 압착층 등 당시 활발한 농경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또한 해남 군곡리 패총에서 출토된 화천과 복골은 해로를 이용해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 해로를 통한 동아시아의 바다경영 - 삼국시대
  • 삼국시대는 농업문화를 기반으로 고대사회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나아가 영산강이라는 천혜의 수로조건과 해양 교통로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어서 백제, 신라, 가야, 왜,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해양 활동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함평 중랑, 해남 신금유적 등 대단위 취락유적은 강을 중심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나주 영동리고분에서는 백제, 신라, 가야계토기가 해남 옥천 만의총에서는 토우장식(토우장식)이 서수형토기(서수형토기), 일본의 조개팔찌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해남 신월리 방대형고분에서는 즙석시설과 다량의 철기 유물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