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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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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의 마을 유치향 有恥鄕
  • 고려시대 지방행정구역은 일반 행정구역과 함께 향소부곡 등의 특수행정구역으로 구성된다. 장흥 상방촌 유적에서는 최초로 ‘유치향 有恥鄕’이라고 하는 행정구역의 위치를 알려주는 고고 자료가 출토됨으로써 우리나라 중세 사회 연구의 큰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곳에서는 사찰을 포함한 수십 여동의 건물지를 비롯하여 도로, 우물, 수로 등이 확인되었으며, 유구 내에서 청자와 기와 등의 다양한 유물도 함께 출토되어, 고려시대 마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 대몽항쟁 그리고 삼별초의 해상왕국
  • 고려 중기 100여 년간의 무신집권기에 일어난 몽고의 침략으로 서남해 지역은 ‘섬을 근거로 해로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 방법인 해도입보(海島入保)의 장소’로 이용된다. 진도 용장성, 신안 압해도 신용리 건물지 등에서 발견되는 ‘癸卯三月大匠惠印’이라는 동일한 명문 기와가 이를 증명한다. 특히 진도 용장성에서는 1270년 고려정부가 개경으로의 환도를 결정하자 그에 반발한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내려와 건설한 대규모의 궁궐과 산성이 남아있다.





  • 도자기·기와의 생산과 유통
  • 강진과 부안은 청자의 주요생산지로, 이곳에서 생산된 고급 청자들은 바닷길을 통해 국내외의 여러 수요처로 운반되었다. 청자의 발달에 따라 지방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청자생산지가 증가하면서 해남 진산리 등에서도 가마들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진산리 가마(사적 310호)는 철화청자의 시작단계에서 운영된 가마로 완도 해저 유물의 생산지로 밝혀져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기와가마도 역시 생산요건 뿐만 아니라 소비지를 고려해 입지 조건이 결정된다. 나주 송월동 유적에서는 통일신라 때부터 고려시대에 운영되었던 기와가마가 조사되었고, 이곳에서 생산된 기와는 인근의 건물지로 공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시대 건물지
  • 나주 황동 유적은 2010년 광주전남 혁신도시 구간 내에 포함되어 발굴조사 된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와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건물지를 중심으로 수많은 주공들과 부속시설로 보이는 흔적들이 조사되었다. 이와 같은 흔적들은 사찰과 민가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도기, 분청자철화당초병, 분청자, 회청자, ‘卍’자 명문와, 평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영암 도갑사는 10여년동안 총 5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대웅보전터, 회랑지, 문지, 석탑지, 보도 등의 다양한 건물지와 부대시설이 조사되었다. 특히 대웅보전터는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조선 전기 사찰의 규모를 가늠하게 한다. 유물로는 청동문수동자상, 청동불두, 도기, 자기, 명문와, 평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 조선후기 지방백자요지
  • 국가의 산하기구로 도자기를 생산하던 분원(分院)은 1883년 중앙관요로서의 임무를 끝내고 도서원(都署員)에 의해 운영되는 민영의 왕실용 자기를 공급하는 도급업체로 전환되어 조선말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사실상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일본 도자기가 대량유입 되고, 일본 자본에 의한 대규모 도자기 공장이 국내에 설립되면서 분원은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운영되었던 장성 수옥리 가마는 지방백자를 굽던 곳으로 일반백성들이 사용할 자기를 대량 생산하였으며, 무안 피서리 가마와 함께 조선말 가마의 구조와 도자 제작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유적이다.